2026년 3월 25일 오후, 경상남도 사천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격납고에서 역사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대한민국이 독자 설계·개발한 초음속 전투기 KF-21 ‘보라매’의 양산 1호기가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출고식에 참석해 “자주국방의 염원을 담았으며 방산 4대강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라고 선언한 이날의 의미를 짚어본다.
25년의 기다림: 국산 전투기 개발의 험난한 여정
KF-21의 출발점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국산 전투기 개발 비전을 제시한 이후, 실제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오랜 정치적·예산적 고비가 이어졌다. 2015년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이 공식 착수됐고, 2022년 7월 시제 1호기의 첫 비행이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검증 단계에 돌입했다.
이후 약 3년 반 동안 1,600회에 달하는 비행시험이 단 한 건의 사고 없이 완료됐다. 2026년 1월 13일, 방위사업청은 개발시험 종료를 공식 선언했으며, 그로부터 불과 두 달여 만에 양산 1호기가 출고되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 전투기 개발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빠른 속도다. 미국의 F-35가 개발 착수 이후 첫 비행까지 10년 이상 걸린 것과 비교하면 대한민국의 성취가 얼마나 압축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KF-21 보라매, 무엇이 특별한가
KF-21은 4.5세대 중형 초음속 전투기로 분류된다. ‘4세대’와 ‘5세대’ 사이의 이 구분이 낯설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현재 공군의 주력인 F-16 계열(4세대)보다는 훨씬 뛰어나고, 스텔스 기능을 전면 탑재한 F-22·F-35(5세대)와는 일부 차이가 있는 수준이다. 다만 레이더 피탐지 면적을 줄인 설계와 첨단 전자전 장비를 고려하면 사실상 5세대에 근접한 성능을 발휘한다는 평가가 많다.
주요 제원을 보면 최대 속도 마하 1.8, 전장 16.9m, 전폭 11.2m, 전고 4.7m이며, 최대 7.7톤의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 공대공 미사일부터 공대지 정밀유도폭탄까지 다양한 무장 운용이 가능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AESA(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 레이더다. 기존 기계식 레이더와 달리 전자적으로 빔을 조향하기 때문에 다수의 표적을 동시에 추적하고 전파 방해에도 강하다. 여기에 적외선 탐색·추적장치(IRST)와 전자전 장비가 더해져 현대전의 복잡한 전장 환경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전투기로 완성됐다.
국산화율 또한 주목할 지점이다. 현재 600여 개 국내 중소기업이 부품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며, 부품 국산화율은 65%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전투기 한 대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 항공방위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두껍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KF-21이 ‘산업적 승수효과’를 갖는 무기체계라고 불리는 이유다.
전력화 일정과 공군 현대화의 밑그림
양산 1호기 출고 이후 실제 공군 인도는 단계적으로 이뤄진다. 올해 내 공군 인수 절차가 진행되며, 2028년까지 첫 40대가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이후 2032년까지 총 120대가 대한민국 공군에 배치될 계획이다.
이는 대한민국 공군의 전력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대전환이다. 현재 운용 중인 노후 F-4와 F-5 계열 전투기들을 대체하고, 한반도 방공망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게 된다. 중국의 J-20, 러시아의 Su-57 등 주변국의 5세대 전투기 전력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가운데, KF-21의 조기 배치는 동북아 항공전력 균형 측면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 KF-21은 미래 업그레이드를 위한 성장 가능성도 열려 있다. 블록 2, 블록 3 업그레이드를 통해 스텔스 능력과 무장 통합 범위를 확대하는 로드맵이 이미 마련돼 있다. 즉, 오늘 출고된 양산 1호기는 완성품이자 동시에 더 강력한 전투기로 진화해 나갈 플랫폼이기도 하다.
방산 수출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될까
KF-21 출고식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방산 4대강국’을 언급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2026년 대한민국 방산 수출이 27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으며, 일부 전문가들은 2027년 세계 4위 방산 수출국 진입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KF-21에 대한 해외 관심은 실제로 뜨겁다. 사우디아라비아 공군 사령관이 올해 초 KAI를 방문해 정비·수리·운용(MRO), 조종사 훈련, 현지 산업 참여 방안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중동과 남미 지역에서도 복수의 국가들이 KF-21 도입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F-35처럼 미국 측의 엄격한 수출 통제를 받지 않으면서도 비슷한 수준의 성능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강력한 경쟁력으로 작용한다.
물론 넘어야 할 산도 있다. 아직 항공 엔진의 완전 국산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해외 운용국 입장에서 부품 공급망과 기술 지원 체계의 안정성을 검증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중동 지역 정세 불안정과 주요국의 방위비 예산 변동성도 변수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들은 K-방산이 이미 K2 흑표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수출을 통해 쌓아온 신뢰로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늘의 의미: 기술 자립에서 기술 수출로
2001년 국산 전투기 개발 비전이 제시된 이후 4반세기가 지났다. 그 사이 예산 삭감 위기, 인도네시아와의 공동개발 갈등, 핵심 기술 이전 제한이라는 난관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오늘 경남 사천 하늘 위로 보라매가 날개를 펼쳤다.
이 장면이 갖는 의미는 군사적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나라가 반도체·자동차·조선에 이어 항공방위산업에서도 독자적인 기술 역량을 보유한 나라로 도약했음을 세계에 알린 선언이다. 앞으로 KF-21이 실제 해외 수출로 이어지고, 블록 업그레이드를 통해 지속 발전한다면 ‘기술 자립’을 넘어 ‘기술 수출’의 아이콘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대한민국의 하늘을 지킬 전투기를 대한민국이 직접 만든다. 그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꿈이 오늘 현실이 됐다.